티스토리 툴바


달력

01

« 2012/01 »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  
  •  
  •  
  •  
2011/10/01 21:13

예수의 기도 속에 있는 제자 주일설교2011/10/01 21:13

예수의 기도 속에 있는 제자 11.10.02.

17:6-7

 

누군가를 위하여 기도한다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한 관심의 정도에 따라 기도하는 횟수나 내용이 다를 수 있다. 사랑하는 자녀를 위한 부모의 기도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항상 이루어진다. 그러나 약간 아는 정도의 이웃을 위한 기도는 그리 쉽지 않다. 예수의 마지막 기도는 오직 그의 제자들을 위한 기도라고 할 수 있다. 예수의 제자들은 예수의 기도 속에 중심 내용이 된다. 1-5절까지는 아버지 앞에 아들로서 기도한 것이지만 6-19절 사이는 제자를 위한 기도다. 우리가 누구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가를 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우리는 예수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다.

 

1.예수는 그의 제자를 위하여 기도한다.

1)예수의 관심 - 예수의 제자는 아버지께서 주신 사람이었음을 말한다. 하늘로 가시는 예수는 이 땅에 남겨질 제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신다. 예수는 하나님 아버지께 그 제자들이 아버지께서 주신 사람들임을 고한다. 자기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많으신 예수는 그 사람들을 잊지 않고 아버지께 소개한다. 제자에 대한 관심이 없다면 그 기도 속에 제자들을 언급하지 않는다. 데살로니가교회에 관심이 있는 사도 바울은 항상 그들을 위하여 기도한다. <살전1:11>“이러므로 우리도 항상 너희를 위하여 기도함은 우리 하나님이 너희를 그 부르심에 합당한 자로 여기시고 모든 선을 기뻐함과 믿음의 역사를 능력으로 이루게 하시고

 

2)예수의 칭찬 - 예수는 그의 제자들이 아버지의 말씀을 지켰다고 고한다. 실제로 제자들이 율법의 말씀을 완벽하게 지켰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예수는 제자들이 아버지의 말씀을 지켰다고 말한다. 율법을 완전히 지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오신 예수를 굳게 붙들었다는 것이다. 아버지께서 보내신 아들을 끝까지 붙들고 있는 그의 제자들을 인정하고 칭찬한다. 아버지께서 인정해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사도 바울은 오네시모를 빌레몬에게 돌려보내며 그를 인정한다. <1:10-11>“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를 위하여 네게 간구하노라. 그가 전에는 네게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하므로

 

3)예수의 추천 - 예수는 그의 제자들이 깨닫고 있는 부분에 대해 아버지께 아뢴다. 제자들은 아들이 가진 모든 것이 아버지께서 주신 것임을 알고 있다고 고한다. 즉 제자들은 예수를 하나님의 보내신 자, 하나님의 일을 하시는 자란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제자들은 하나님의 아들이 하신 모든 것(말씀, 사역 등)이 아버지께서 주신 것임을 알고 있다. 이것은 그들이 그만큼 깨닫고 알고 있다는 것, 즉 그들이 성숙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즉 쓸 만한 사람이 되었다고 보고한다. 예수는 제자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역이 이루어질 줄 믿고 그들이 이 세상에 있다는 사실을 아버지께 아뢴다.

 

2.예수의 기도 속에 있는 제자들은 받은 은혜가 있는 사람이다.

1)아버지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 아버지의 이름을 안다는 것은 아버지를 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믿음의 조상들에게는 전능의 하나님으로 나타나셨다.<6:3>“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전능의 하나님으로 나타났으나 나의 이름을 여호와로는 그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였고 그러나 모세에게는 여호와란 호칭을 알게 하셨다. 신약시대에는 예수라는 이름을 알게 하셨다.<1:21>“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17:11,12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 - 아들은 아버지의 이름을 가지고 이 세상에 오셨다. 구원을 이루시는 것이 아버지의 이름의 의미다.

 

2)아버지의 말씀을 지키게 되었다. - 예수의 제자들은 생명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그것을 주목하고 붙잡는 사람이 되었다. 사람이 어떤 어려움 속에서 무언가를 붙잡을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일이다. 구원의 줄을 붙잡을 수 있는 사람은 사망의 권세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된다. “지키다”(테레오=주의해서 그곳에 시선을 두는 것) 바라볼 수 있는 것이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절망이란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것이다. 예수의 제자들은 생명과 영원한 것을 바라보는 사람이 되었다. 소망이 있으며, 고난 중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힘을 얻는 사람이 된다.

 

3)모든 것의 근원을 알게 되었다. - 예수의 제자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를 본 사람들이 되었다. 땅에 있지만 하늘의 것을 본 사람이 된 것이다. 생명이 어디에서 오는지 그 근원을 알게 된 것이다. 예수의 표적의 능력, 치유하심, 말씀을 선포하심 등 모든 것이 하나님아버지로부터 나왔음을 깨닫게 되었다.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가 그 아들을 통하여 나타났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이 되었다. 제자들은 아들을 통하여 아버지를 본 사람이다. <14:9>“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3.예수의 기도 속에 있는 사람의 삶

1)예수의 기도 속에 있는 나를 발견하라 예수의 제자는 자기를 위하여 기도하는 예수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으로서 스스로의 가치를 알고 자존감이 가진다. 사도 바울은 예수의 중보기도에 대해 말하며 구원받은 자들이 정죄를 당하지 않는 확신을 가진다는 것을 말한다. <8:34>“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아무 것도 아닌 나가 아니라 예수께 가장 소중이 여김을 받고 있는 나를 발견해야 한다. 예수의 제자가 아들의 기도 속에 있다는 사실은 제자들에게 큰 위로와 함이 되고 자부심이 된다.

 

2)아버지의 말씀을 지키라 아버지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아버지의 말씀을 지킨다. 말씀을 지킨다는 것은 율법적으로 계명을 지킨다는 개념이 아니다. <예수께 찾아 나온 선한 청년은 이미 계명을 다 지킨 사람이었다.> 말씀이 나를 구원할 생명의 줄임을 알고, 그것을 주목하고, 그것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붙잡는 것이 말씀을 지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 = 예수가 없이는 나는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예수를 붙잡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말씀(12: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을 붙잡고 알지도 못하는 땅으로 나아갔다.

 

3)생명의 근원을 잃어버리지 말라 예수의 제자는 하나님이 주신 구원과 생명이 아들을 통하여 왔음을 깨달았다. 그 생명의 근원이 어디인지 알았다. 이 근원을 잃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사무엘 시대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방민족과 같이 그들에게도 왕을 세워달라고 구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구원과 하나님의 생명을 잃어버린 것이다. 구원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알고 그것을 잃지 않아야 한다. 예례미야 당시 유대인들의 삶은 생명의 근원을 버린 것이다.<2:13>“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

 

하나님 아버지와 대화하시는 예수의 기도 속에 등장하는 예수의 제자의 문제는 제자들이 하나님께 소중히 여김을 받을 수 있는 근거가 된다. 그의 제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시는 예수의 관심과 사랑이 지금도 예수의 제자 된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있다. 이 사랑과 관심을 받은 자로서 담대하게 살고,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을 아는 자로서 생명의 근원을 잃지 않아야 한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주일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예수의 기도 속에 있는 제자  (0) 2011/10/01
열린 천국 문  (0) 2010/03/06
그리스도  (0) 2010/02/23
신앙의 기본  (0) 2010/02/19
생각과 시각  (0) 2010/01/31
택함 받은 자  (0) 2010/01/26
Posted by 딜리버리
2010/07/24 20:36

무화과나무를 보고 배우라 분류없음2010/07/24 20:36


무화과나무를 보고 배우라 10.07.25.

마24:32-36

 

가장 위험한 운전은 졸음운전이다. (시속100km =27.8m/sec) - 교통사고 / 인생을 졸면서 살아가는 사람은 인생의 사고로 연결된다. 다가오는 환경에 대해 적절하게 반응할 수 없다. 주님이 다시 오실 것을 말씀하시면서 제자들에게 깨어있으라고 강조하신다. 주님이 오시는 때는 징조는 있지만 그 날을 모른다. 홀연히 오시는 것이기 때문에 깨어있는 자만 영접할 수 있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무화과나무를 보고 배우라고 하셨다. 일상 속에 있는 것을 통하여 하나님의 의도를 깨달을 수 있는 지혜로운 사람이 된다는 것은 가장 큰 성공을 거두는 삶이다.

 

1.징조를 보고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1)형식적 신앙 - 삶의 의미에 대해 깨어있지 못하다. 드러난 현상만 볼 뿐이지 그것의 의미를 모른다. 무화과나무 잎이 푸르게 된 것만 볼 뿐, 그것을 통해 여름이 가까운 줄 생각하지 못한다. 드러나 보이는 일들에다가 영적 의미를 부여하지 못한다. 현대의 인간의 타락성과 인간의 과학 기술적 진보를 보면서 이것이 세상의 마지막을 보여주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무지개를 보여주셨지만 사람들은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바벨탑을 쌓았다. / 에서는 장자의 명분을 소홀히 여겼다.

 

2)불신 - 주어진 약속에 대해 깨어있지 못하다. 이 사람은 주님의 약속의 진실성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약속을 약속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약속을 약속으로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약속에 대해 내가 무엇을 할 것인가를 판단하지 않는다. 주어진 약속 보다는 지금의 형편과 처지에 사로잡혀 있다.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 대한 약속에 대해 깨어있지 못하기 때문에 힘든 환경을 만나면 곧 불평과 원망이 나온다. “곧 다시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주인이 종들에게 주었지만 깨닫지 못하는 종은 이 말을 잊어버리고 산다.

 

3)방탕 - 시간(때)에 대해 깨어있지 못하다. <마16:3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천기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 잠자는 자는 다가오는 일의 임박성을 알지 못하고, 지금이 어떤 때인가를 모른다. 사명을 알지만 지금이 바로 그 사명을 감당할 때라는 생각은 못한다. 시간에 대해 깨어있지 못하는 사람은 시간을 의미 있게 사용하지 못한다. 세월을 아끼지 못한다. <엡5:16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세월을 아낀다는 것은 시간을 산다는 것이다. 시간에 대해 방탕한 사람이다.

 

2.예수는 제자들이 하나님의 때를 깨달을 수 있도록 주셨다.

1)예수는 창조주로서 만물을 질서 있게 이루셨다. - 예수는 무화과나무를 만드신 창조주시다. 예수는 제자들이 무화과나무를 보고 깨닫기 원하셨다. 예수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의 창조주로서 세상의 모든 자연을 질서 있게 하셨다. 무화과나무가 뿌리를 내리고 싹이 나고 잎이 피고 열매를 맺는 것도 다 창조주께서 정하신 질서와 순서대로 이루어진다. 창조의 질서를 읽을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만드셨다. <욥38:4-5>“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지니라. 누가 그것의 도량법을 정하였는지, 누가 그 줄을 그것의 위에 띄웠는지 네가 아느냐”

 

2)없어지지 않는 말을 주셨다. - 천지는 없어질지언정 예수의 말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다. 세상에 있는 모든 피조물들은 질서 있게 존재하다가 없어진다. 그러나 주님이 주신 말씀은 결코 없어지지 않는다. 자연은 예수의 제자들이 보고 무엇을 깨달을 수 있는 도구다. 예수의 제자들이 항상 깨달아야 할 것은 주님의 말씀이다. 말씀을 주신 예수를 잘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진다. <신26:19>“그런즉 여호와께서 너를 그 지으신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사 찬송과 명예와 영광을 삼으시고 그가 말씀하신 대로 너를 네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이 되게 하시리라”

 

3)때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말씀하셨다. - 예수는 세상의 마지막 때는 아무도 모르고 오직 하나님 아버지만 아신다고 하셨다. 세상의 모든 것은 정한 때가 있는데 그것을 정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다. 지혜로운 솔로몬의 고백 <전3:1-3>“범사가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죽일 때가 있고 치료할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하나님은 모든 것을 그의 계획하신대로 이루신다. 그 때는 아들도 모르고 하늘의 천사들도 모른다. 오직 하나님의 주권 속에 있는 것이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

 

3.다시 오실 주님께 대하여 깨어있는 성도들의 삶

1)진리를 배우려는 열린 마음 - 하나님의 진리를 배우려고 하는 열린 마음이 중요하다. 무화과나무를 보면서 하나님의 원하시는 뜻을 알려고 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진리에 대한 개방적 태도가 있어야 한다. 예수를 재판하는 빌라도는 “진리가 무엇이냐?”라고 묻기는 하지만 그는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들어보지도 못한 ‘진리’라는 말에 대해서 질문한 것뿐이다. 배우고자 하는 마음이 있으면 일상 속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무화과나무를 보면서 하나님의 때를 깨달을 수 있다. 징조를 통하여 진리를 아는 사람은 개방적인 마음을 가진 사람이다.

 

2)때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신뢰 - 모든 때는 하나님의 손에 있다. 하나님의 싸인을 읽는 사람은 모든 때를 하나님이 주관하신다는 것을 믿는 사람이다. 무화과나무가 싹이 나고, 자라고, 잎이 나고, 열매를 맺는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다. 하나님의 일을 바로 알면 현재의 상황으로 미래를 예측할 수 있으며, 그의 모든 삶을 온전히 하나님께 의탁하는 삶을 산다. 애굽의 왕자였던 모세가 애굽 사람을 쳐 죽인 사건은 하나님의 때를 모르는 것이었다. 자기의 힘과 권세로 자기 민족을 위하여 무엇인가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나님의 주권을 모르면 사람은 조급해진다.

 

3)일상의 현상을 영적 교훈으로 변환시키는 능력이 필요하다. - 예수의 가르침은 하늘을 나는 새, 들의 백합화를 보라고 하시며, 농사를 짓지 않고, 길쌈도 하지 않는 그들을 키우시는 하나님을 가르쳤다. 모든 사람이 아무 의미 없이 자나가는 것도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은 어떤 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 예수의 제자는 이런 능력을 키워야 한다. 일상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는 변환의 능력을 가진 사람이 지혜로운 삶을 살 수 있다. 깨어 있다는 것은 어떤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뜻을 깨달을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이 주신 징조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 무화과나무의 푸른 잎을 보고 여름이 가까운 줄 아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다. 현실의 모든 상황에서 하나님의 뜻하신 바를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의 생각의 초점이 늘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날에 맞추어져 있어야 한다. 생각이 있는 사람은 징조를 통하여 쉽게 깨달을 수 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Posted by 딜리버리
2010/03/18 20:52

봄날을 기다리며 목회칼럼2010/03/18 20:52


3월의 날씨가 너무 이상하다. 갑자기 추워지고 눈이 오다가 다시 녹았으며, 기온은 마치 불위에 물을 끓이는 냄비처럼 갑자기 끓어 올랐다가 다시 쉽게 식어버리고 있다. 

한반도 위의 대기권에서 남쪽의 따뜻한 기류와 북쪽의 찬 기류가 서로 맞부딛쳐 있어서 그 힘이 밀고 댕기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따뜻한 바람이 힘을 얻으면 차가운 공기는 물러가게 되고, 차가운 공기가 힘을 얻으면 따뜻한 공기는 위로 올라오지 못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대기가 서로 비슷한 힘을 가지고 있기에 비와 눈을 뿌려대는 이런 변덕스런 날씨가 우리를 헷갈리게 하는 것이다.

마치 한 지역을 두고 서로 전쟁을 벌이는 두 국가와 같으며, 한 사람을 두고 서로 차지하려고 하는 영적 전투와 같다.
사람은 귀신이 자리잡고 자기 집이라고 우겨대고 있으며, 또한 성령이 사람 속에 거하심으로 믿는 자는 거룩한 성전이 된다.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 들어 있으면 사람은 귀신의 영향력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없으며, 그 눈으로 하나님의 하신 일도 볼 수 없고 또한 그 입으로 신앙을 고백하거나 진정한 찬양이 없게 된다. 그러나 성령이 그 안에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신앙을 고백하고 영적 기도를 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우리를 지배하는 영적 힘이 귀신이 아니라 성령이 되어야 한다.
더러운 귀신은 예수의 이름으로 쫓아내 버리고, 오직 성령을 모시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3월에는 빨리 추운 겨울이 지나고 따뜻한 봄날이 되기를 원한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영적인 삶에서도 밝은 빛이 있으며, 하나님의 따뜻한 은혜가 있는 날이 더욱 기다려진다.
우리의 삶의 대기권에서 성령께서 세력을 강력하게 역사하시고, 그 역사하심을 통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따뜻한 은혜 가운데 있는 영적 봄날이 되기를 바란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목회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봄날을 기다리며  (0) 2010/03/18
눈을 치우면서  (0) 2010/01/08
오래 보존하고픈 성탄 선물  (0) 2009/12/23
믿음과 성탄  (0) 2009/12/22
말씀을 받아 먹는 젊은이들  (0) 2009/12/04
장례식 하루  (0) 2009/11/16
Posted by 딜리버리